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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대표적 여성 작가 강경애(姜敬愛)

문화관광부는 “2005년 3월의 문화인물”로 일제 식민통치 하 가장 억업받았던 노동자와 농민, 특히 하층 여성을 대변한 작품과 만주 지방 항일무장운동가들의 고난의 삶을 그려낸 근대문학의 대표적 여성 작가인 강경애(姜敬愛)선생을 선정했다.

강경애는 식민지 시대 작가로서는 드물게 하층 여성의 목소리를 공식 기록으로 끌어올린 식민지 시대 하층 여성의 대변자이다.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죽은 뒤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 다섯 살 무렵 먹고 살기 위해 재혼하는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사했다. 의붓형제들 사이에서 힘들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고 형부의 도움으로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다.

1923년 학교의 엄격한 규칙과 강요된 종교교육에 항의하는 학생 맹휴 관련자로 퇴학을 당한 후, 서울 동덕여학교도 잠시 다녔다. 1924년 후반기 장연에 돌아온 뒤 야학 교사도 하고 근우회 장연 지회의 일을 맡으면서 문학 공부에 힘썼다.

독자 투고로 작품들을 발표하다가 1931년에 “혜성”지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로 등단했다. 장연을 배경으로 봉건적 억압에서 헤어나지 못해 비참하게 살아간 어머니에 비해 딸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로 농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1931년 6월 경 결혼과 함께 간도 용정으로 이주했지만 간도 이주 직후 벌어진 만주사변과 일본군의 야만적인 토벌작전을 피해 1932년 6월 일시 장연으로 돌아와서 있다가 1933년 9월 경 다시 간도로 간다. 특히 1932년 봄에 간도에서 벌어진 토벌 작전에서 항일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강경애는 1932년 6월에 장연으로 돌아온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이 때의 “간도의 봄”을 증언하는 것을 자기 문학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다.

근대문학사상의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강경애의 작품 세계의 주요한 특징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극심한 빈곤 체험과 작가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간도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식민지의 농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농민들을 그러한 역경에 순응하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의 눈으로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강경애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성장 과정덕분이었다. 또한 간도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검열을 피해 가며 한반도 안의 독자에게 알리는 것을 작가로서의 자신의 의무로 생각했다.

그의 작품은 황해도 장연을 배경으로 한 것과 간도 용정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장연 배경의 작품 중에서는 식민지 자본가와 농민, 노동자의 대립 구조 속에서 농민과 노동자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들의 투쟁을 현실성 있게 그림으로써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근대 소설사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장편소설 “인간문제”(1934)와 장애자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빈궁의 극한 경지를 그려낸 “지하촌”(1936)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인간문제”는 식민지 친일지주와 농민, 식민지 자본가와 노동자의 뚜렷한 갈등 구조 속에서 작품을 구성했을 뿐 아니라, 농촌의 각종 풍경,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농부의 마음과 그것을 빼앗길 때의 쓰라린 마음, 인천 부두 노동자의 세계, 식민지 대자본이 들어와 설립한 대규모 방적 공장의 내부 모습과 운영 방식, 그 당시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1930년대 식민지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정확한 세부로써 묘사하는 데 큰 성과를 내었다.

간도 배경의 작품 중에서는 일본의 비공식적 식민지 만주국에서 중국인 지주와 일본 경찰에게 학대받는 조선 민중의 비참한 처지를 보여주면서 이런 불합리한 사회를 뒤엎기 위해 총을 들고 일어선 항일무장부대의 모습과 그에 대한 민중의 감정을 암시적으로 반영한 “소금”(1934), 반만 항일 운동이 기세가 줄어들면서 전향하는 세태와 그 속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그린 “어둠”(1937)이 대표적이다.

특히 “소금”은 남편은 지주의 일을 해 주다가 항일운동 세력에게 총 맞아 죽고 아들은 항일운동을 한다고 만주국 관헌에게 잡혀 죽는 기구한 운명의 봉염 어머니를 그렸다. 그러면서도 비참한 운명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기를 그렇게 못살게 군 존재가 누구이며, 자기를 구원해 줄 존재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대목을 작품의 마지막 순간에 두는 방식으로 일제의 검열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항일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실상을 한반도 안의 독자에게 전하려고 애썼다. 작품의 제일 마지막 부분은 검열 때문에 시커멓게 붓질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독자는 작가의 전하는 바를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배치된 작가의 문학적 고투가 담긴 작품이다.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악화된 상황 속에서 강경애는 심신이 병들어 갔다. 원래 몸이 약하기도 했지만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심지어는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쓰라고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강경애는 1938년 5월 이후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1939년 경 고향 장연으로 돌아온 강경애는 1940년 짤막한 수필 2편을 끝으로 붓을 놓았고 병고에 시달리다가 1944년 4월 해방도 보지 못한 채 3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최소한 중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얻을 수 있는 관계망이 필요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극한의 궁핍, 서울 중심의 중앙 문단과는 동떨어진 간도에서의 작가 생활 등 강경애는 그런 점에서 여느 여성 작가와는 환경이 달랐다.

궁핍이란 작가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기회가 되며 남성 작가들에게서 궁핍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그런 궁핍을 극복하고 자기를 표현할 기회를 얻기란 극히 어려웠다. 궁핍한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예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성찰의 시간도, 글을 쓸 만한 시간과 공간도 가지지 못했다. 그리하여 공식적인 기록물에 여성의 흔적을 남길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일제시대 역경을 딛고 작가로 성장하여 민족적, 계급적, 성적 억압에 고통 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여성 작가 강경애는 그렇기 때문에 하층 여성의 시선을 넘어서서 당대 여느 작가들이 볼 수 없었던 식민지의 실상을 두루 보아낼 수 있었고 그리하여 일제시대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근대문학사에 자리잡았다.

[문의] 국어민족문화과 02-3704-9438


200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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