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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통의 옥천 '구읍할매묵집' - Joins.com에서 발췌
What's On[ 2003-09-04 18:35:02 ]
http://www.whatsonkorea.com
의자왕에게 극간(極諫)을 하여 투옥된 백제의 충신 성충은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외적이 침입하면 육로는 탄현, 물길은 기벌포에서 막으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탄현은 (두어 가지 이설이 있기는 하지만) 대전에서 충북 옥천으로 넘어가는 4번 국도 마달령 고개와 식장산 정상 사이 어느 곳으로 추정된다.

성충이 그런 유언을 한 까닭은, 그로부터 1백여년 전인 554년, 그 근처에서 백제의 왕이 전사한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백제 중흥의 꿈을 가꾸던 성왕(523∼554)이 관산성 싸움에서 전사한 것이다. 성왕은 무령왕의 아들이요, 관산성 전투의 신라군 주요 장수는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이었다.

관산성 자리는 옥천역 뒤, 해발 303m의 삼성산(속칭 재건산) 정상 일대로 추정된다. 걸어서도 오를 수 있는 야산이다. 백제가 신라군의 침입을 대비해 쌓은 성으로 보이는데 둘레는 900m쯤 된다.

관산성 첫 전투에서는 백제군이 승리했으나 밤에 이동하던 성왕은 구천(狗川)벼랑(이곳 이름은 구진벼루)을 지나가다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사로잡히고, 절벽 아래서 목이 베이게 된다. 신라군은 성왕의 몸만 돌려주고 머리는 가져갔다고 한다. 문화재청 공식기록에는 백제 성왕 사절지(死節地)의 주소를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 9-3'이라고 비정(比定)하고 '마을을 감싸고 도는 1km 가량의 협곡인데 그 한가운데 높이 30m정도의 낭떠러지가 있다. 그 아래서 성왕이 살해되었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전서 옥천으로 가다 보면 읍내에 들어가기 직전 다리(삼거교)를 건넌다. 건너자마자 금산(추부) 쪽으로 우회전해 1.5㎞쯤 가면 월전리 버스정류장, 그 아래로 서화천이 굽이치며 마을을 감싸고 도는 곳이 바로 역사의 현장이다.

오늘날의 옥천은 세인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물 맑고 산 좋은 건 말할 것 없고 곳곳에 역사의 자취와 큰 인물의 향훈이 서려 있다.

조선 초기 인물로 김문기(金文起 1399~1456)가 있다. 단종 복위를 처음 도모하던 6인, 원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 선생도 있다. 당대에 꼽히던 성리학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선조 25) 8월 18일 제2차 금산싸움에서 영규대사와 7백 의병을 이끌고 분전하다 모두 전사했다. 제자들이 유골을 모아 한 곳에 묻으니 오늘의 금산 칠백의총이다. 그의 묘소는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에도 있다. 그리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조선 중후기 성리학의 대학자이자 막강했던 정치인으로 노론의 영수였다.
현대에 와서는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부인으로, 온 국민으로부터 국모로 존경받던 육영수(陸英修, 1925~1974)여사를 배출했다. 1942년 서울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옥천여중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를 부르는 옥천의 인물은 단연 정지용(1902~1950?) 시인이다. 한국현대시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그의 시 '향수'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국민 애송시로 사랑 받고 있다.


옥천역에 내리면 그의 다른 시 한 편이 길손을 맞는다.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묵집에서 1백여m거리에 있는 정지용 생가 전경과 '향수' 시비 ▲

정지용은 1902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40번지에서 태어났다.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휘문고보 재학 시절부터 활발한 습작활동을 통해 문재를 날렸다. 졸업 후 휘문학교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와 모교와 이화여대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6.25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경기도 고양군 녹번리(현재 서울 녹번동) 자택에서 잠시 다녀오겠다며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이후 여러 추측과 주장이 있었으나, 그가 남쪽에서 문화공작대 임무를 마치고 평양으로 귀환하던 중 1950년 9월 21일 아침 동두천 소요산 근처에서 미군기의 기총소사로 사망했다는 북측 원로문인의 목격담이 최근 전해졌다.

생가 옆 작은 공원에 동상으로 우뚝 선 정지용은 어딘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


지용이 실제 태어나 12~13년쯤 살았던 집은 오래 전 사라졌다. 현재의 생가는 1996년 옥천군에서 그 자리에 있던 건물을 헐고 본채와 행랑채 초가, 돌담과 우물을 갖춰 복원한 것이다. 집 앞으로는 시 '향수'에서 묘사한 것처럼 실개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흐르고, 집 옆 작은 공원에는 안경 끼고 두루마기 입은 시인의 동상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청석교 다리 쪽 삽작 거리에는 '향수' 시비와 기념판이 부착된 표석이 있다.

그가 한국현대시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이유는 작품과 후진 발굴의 업적 때문이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감각의 현대적 시어를 구사한 개척자였으며, 이상을 필두로 청록파로 불리는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을 발굴했고 박남수도 문단에 소개했다.

그의 고향 하계리는 지금은 구읍(舊邑)이라 하여 옥천 중심가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부선 철도가 열리기 전까지는 이곳이 읍의 중심지였다. 철도를 내려는 일제의 계획을 이곳 지주들이 반대해 현재 위치에 옥천역이 생기자 도시 기능이 역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새로운 읍이 형성되자 이 지역은 구읍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신읍과 구읍 사이를 가로지르고 지나가는 바람에 구읍은 중심으로부터 확실히 격리된 한적한 농촌이 되고 말았다.

지용의 고향 하계리 이웃 마을은 교동리다. 전국적으로 많은 동네이름 교동은 대개 조선시대 향교가 있던 마을이다. 옥천 교동도 마찬가지인데 이 마을이 육영수 여사가 태어난 마을이다. 99간 큰집이던 생가는 쇠락해 이젠 잔해만 남아 있다. 가까운 마을 출신이다 보니 陸여사는 지용의 죽향초등학교 후배가 됐다.

지용 생가에서 청석교를 건너 1백m쯤 가면 오른쪽으로 고래등같은 기와집 몇 채가 모여 있다. 한때는 옥천여자중학교였던 곳이다. 陸여사가 결혼하기 전 교사로 근무한 학교다.

그 기와집들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50년간 메밀묵과 도토리묵만 만들어 팔아 온 '구읍할매묵집'이 있다. 김양순(75) 할머니가 25세 때 열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역사적인' 음식점이다.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 인데 50년을 이어 오며 지금은 묵 하나만으로 대전과 옥천 일대에서 알아주는 음식명소가 됐다. 묵 팔아 키운 할머니의 5남매 중 세 아들도 묵집을 한다. 원조집의 주방은 힘이 부쳐 막내아들 부부(강일호·43-최순자·42)에게 물려줬다. 큰아들 인종씨는 대전에서 옥천으로 넘어 오는 길목 세천에서 절골묵집(042-273-9538)을, 둘째 의호씨는 대구 팔공산 관광단지에서 시골묵집(054-975-5641, 011-9232-5641)을 운영한다.

원조집을 대물림한 막내며느리는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니 일을 돕기 시작해 올해로 19년째, 실질적으로 묵집 요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핵심적인 맛내기는 할머니 몫이다.

예고 없이 취재를 가 사정을 얘기하니 막내며느리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경계의 빛이 완연했다. 거기 소개 안해도 손님 많다는 얘기. 몇 차례 통사정 끝에 알아낸 사연은 기사 나가면 신문·잡지 구독하라고 하도 성화를 해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 없을 거라는 몇 차례의 설득에 겨우 촬영과 질문을 허락했다.

이 집에는 음식을 만드는 데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도토리나 메밀은 절대 국산만 쓴다. 재료가 떨어지면 가게를 닫는다.
둘째, 도토리, 메밀, 고추를 방앗간에서 빻아 오는 일만 기계로 하고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한다.
셋째, 화학조미료는 일절 쓰지 않는다.

3천원짜리 도토리묵 한 상. ▶


음식은 오로지 묵뿐이다. 11월부터 다음해 4~5월까지는 메밀묵과 도토리묵을 채쳐 동치미국물과 함께 내고, 나머지 기간에는 도토리묵에 멸치장국만 낸다. 요즘엔 장국에 말아먹는 묵밖에 없다는 말이다. 묵을 쑤면 식혀야 하는데 메밀묵은 날씨가 더워지면 식기도 전에 녹아 버린다. 그래서 여름엔 메밀묵을 하지 않는다.         

"원래 여름 장사는 안했어요. 날마다 문을 여는 것도 아니었구요. 재료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했는데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요즘엔 사철 영업을 해요. 5년 전, 이 집 새로 짓고 난 다음부터예요."
며느리 최씨의 말이다.

원래는 장국이 아닌 동치미에 묵을 말아먹는 것이 이 집 음식의 본령이다.
"멸치장국보다 동치미국물에 말아야 그게 진미지요. 동치미는 11월에 담그는데, 가슴까지 닿는 독 20개쯤 해요. 그러면 다음해 4~5월까지 써요. 동치미 무는 '태백 무(=종자 이름)' 가 좋아요. 무가 단단하고 달면서 잎은 연해 동치미 담기에 맞춤이지요. 그런데 자라는 속도가 느려서 농민들이 재배를 안해 하는 수 없이 직접 무 농사를 지어요. 장국을 만드는 조선간장도 직접 담가야 하기 때문에 콩 농사도 놓지 못해요."

이처럼 이 집 음식은 원 재료와 양념이 옛날 시골집에서 해먹던 그대로다. 양념도 풍부하고 다양해졌지만 최소한의 양념만으로 맛을 낸다. 그래서 맛이 담백하고 깊고 시원하다. 뒷맛 또한 깔끔하다. 화학조미료는 일절 안 쓴다. 맛내기의 중심재료는 집에서 담근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 김 가루뿐이다. 다양하지는 않아도 질은 최상품을 쓰는 것이다.

참깨는 이 마을에서 농사지은 것을 직접 사다 쓰고, 그 참깨로 필요한 만큼 조금씩 참기름을 짜다 쓰기 때문에 맛이 아주 고소하다. 김 가루도 기성품을 사다 쓰지 않는다. 날 김을 직접 구워 쓴다.

"장작 때고 남은 불에 구워야 김 비린내가 안나요. 그래서 귀찮지만 묵 쑤고 남은 불에 일일이 굽는 거지요. 원래 김 가루는 안 넣었어요. 잘 익은 김치와 삭힌 고추 다진 것에 깨소금, 참기름만 넣고 비벼 먹는 것이 가장 맛있어요. 김을 얹는 것이나 장국에 말아먹는 것은 근래의 일이에요."
원조집을 대물림한 막내아들 강씨의 말이다.

주방의 조리대 앞에는 이 집의 관록을 보여 주는 항아리 하나가 있다. 참기름을 담는 옹기 항아리다. 이 집과 50년 역사를 함께 하고 현재도 제구실을 하는 현역이다. 조리대 앞은 장판이 깔린 넓은 방이다.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방바닥에 밥상이 6개 놓여 있고 4개는 손님이 많을 때 쓰려고 한쪽에 쌓아 두었다. 방에서 밥상을 받듯 바닥에 앉아서 먹는 것이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그 광경만으로도 애틋한 향수가 느꺼울 것이다.

시원한 곳에 저장한 묵을 채친 다음 미지근한 물에 담가 묵 속의 냉기를 빼낸다. 그릇에 옮겨 담고 잘 익은 배추김치를 종종 다져 얹은 다음 김 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넉넉히 친다. 그리고 멸치장국(겨울~봄엔 동치미) 한 그릇과 함께 낸다. 식성에 따라 장국을 부어 말아먹어도 되고 나온 대로 비벼 먹어도 된다. 양념간장과 다진 매운 풋고추(겨울~봄엔 삭힌 고추)가 따라 나오는데 이 또한 식성대로 가미해 먹으면 된다. 상에는 시원한 열무김치(겨울엔 김장김치) 한 대접도 함께 차려진다.

동치미말이는 그것대로 시원하지만 장국말이도 솜씨 좋은 할머니의 조선간장이 바탕이 된 깊은 맛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순 자연 양념만으로 낸 맛은 깔끔하고 개운하다.

[왼쪽] 껍질은 깐 상수리 [오른쪽] 껍질을 까 말리고 있는 도토리 ▲


도토리묵은 실은 상수리묵이다. 도토리는 키 작은 나무에 열리는 갸름한 열매로 땅콩 알보다 작다. 작으니 들인 품에 비해 수확이 적다. 그래서 산에 가서 주워 오려는 사람이 없고, 시장에서 물건을 구하기 어렵다. 꿩 대신 닭이라고 상수리가 대용이다. 상수리는 20여m 크기의 굴참나무 열매로 구슬처럼 동그랗고 크기도 제법 크다. 묵 맛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알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상수리가 익어 가는 8월말부터 전문 수집상에 맡겨 수집한다. 1년에 상수리 40~50가마를 사들여 창고에 보관해 두고 쓴다. 메밀은 곡물이기 때문에 수확 철이 지나도 농가나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상수리는 철 지나면 구하기가 어려워 철을 놓치면 1년 장사가 어려워진다.

상수리는 옥탑 창고에 저장해 두고 조금씩 껍질을 벗겨 말리면서 쓴다. 한꺼번에 껍질을 벗겨 두면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말린 상수리는 날마다 다음 날 쓸 만큼만 방앗간에서 빻아 온다. 도토리 가루는 고운 베 자루에 담아 물에 넣어 4시간 정도 우린다. 여러 차례 물은 갈아준다. 그래야 떫은맛이 빠진다. 그런 다음 새 물을 붓고 자루를 손으로 짓눌러 가며 도토리 녹말이 섞인 물을 짜낸다. 그 물은 황토를 풀어놓은 것과 색이 흡사하다. 쌀뜨물에 된장 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을 조금씩 더해주며 황토색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지 짠다. 그 물을 큰 통에 모아 가라앉히면 묵의 기본 재료인 도토리 가루가 되는 것이다. 오래 우리고 고운 자루로 짜내기 때문에 입자가 고와 묵에 찰기가 더하고 맛은 순하고 부드럽다.

메밀은 자루에 넣어 짜는 게 아니라 물에 풀어 발이 고운 체로 거른다. 이때 농도를 잘 맞추는 것이 비결이다. 가루를 푼 물을 가마솥에 붓고 장작불을 지펴 끓이면 묵이 되는데 그저 불만 땐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바닥이 눋지 않도록 큰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어야 한다. 일손이 좀 많이 가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손이 가야 한다. 여름엔 하루 도토리 2말쯤 묵을 쑤는데 2말이면 묵 15모가 나오는 굳힘 판으로 세 판쯤이다. 겨울엔 4~5말 쑨다.

이 집에 묵 말고 한가지 요리가 더 있었다. 자연산 버섯찌개인데 2002년부터는 하지 않는다. 40명 단체손님이 와서 버섯찌개를 먹고 갔는데 노인 한 분이 배탈이 났다고 항의가 들어왔다. 그 즉시 할머니가 버섯을 모두 내다 버리고 버섯찌개 메뉴를 없앴다.

옥천이나 영동 깊은 산에서는 9~10월에 자연산 버섯이 많이 나온다. 이 버섯으로 찌개를 끓이는 것이다. 능이버섯, 밤버섯, 싸리버섯을 섞어 넣고 돼지고기 사태살을 넣어 맵게 끓이는 찌개다. 능이는 데쳐서 결대로 찢어 초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별미다. 야생 버섯에는 어느 정도 독소가 있다. 보통사람은 먹어도 해가 없지만 예민한 사람은 탈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탈이 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못 먹게 됐다. 하지만 잘 아는 단골들이 원하면 끓여 주기도 한다. 예민하지 않으면서 자연산 버섯을 좋아한다면 미리 전화하고 가 볼 만하다. 먹어 본 경험으로는 어떤 고급요리도 안 부러운 맛이다. 값은 2002년 기준으로 작은 것 1만5천원, 큰 것은 2만원.

방 한쪽 벽 아래에는 여러 종류의 과실주 병이 진열돼 있는데 용틀임하는 길다란 뿌리가 들어 있는 병이 단연 눈길을 끈다. 최소한 4백년은 됐다는 잔대뿌리다. 강씨의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 가다가 마을 뒷산에서 캤다고 한다.

후룩거리며 묵 한 그릇 먹고, 시 '향수'를 나직이 읊조리며 지용 생가 앞 실개천 길을 따라 유유자적 시골길을 걸어보는 것도 맛있는 삶의 한 장면으로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 Joins.com에서 발췌
[2005-05-21 19:00:40]
[2003-12-01 1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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