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환율
 
 주가
 
 건강
 
 게임

2021년 01월 20일 (수) 
 
구분 기사 리스팅  
 
英語 English | 日本語 Japanese  
지역 검색  
소개 | 둘러보기
지역축제 | 테마여행 | 유용한정보
 
숙박시설
 
More  

앤게스트하우스
외국 배낭여행객 및 내국인을 위한 숙...

진(眞)게스트하우스
진(眞)게스트하우스(Jin Guesthouse)는...

불정역 테마펜션열차
경북선 철도중 가장 오지선로인 문경시...
 호텔전통숙박시설여관게스트하우스유스호스텔펜션홈스테이/민박 ...
 
음식점
 
More  

통선재
이순신 장군의 소박함과 백성을 아끼는...

올림피아호텔 뷔페식당 구르망
복탕, 해삼탕과 같은 건강식을 비롯하...

은하수 (세종호텔 한식 부페)
국내 최초로 한식을 뷔페화한 곳으로 ...
 한식양식 (American)일식중식프랑스씨푸드뷔페베지테리안이탈리아 ...
 
주점·카페바·커피숍
 
More  

해피홀리
바다와 접해있어 전망이 좋은 카페로 ...

나무 (족욕 와인바)
오전에는 일반 카페로 운영하다가 오후...

캐슬 프라하 (Castle Praha)
유럽풍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이벤트 카페카페, 바커피전문점민속주점라이브클럽디스코테크스카이라운지 ...
 
쇼핑
 
More  

파라다이스면세점 (부산)
1983년 부산 최초의 면세점으로 오픈한...

파라다이스면세점 (대구)
대구국제공항 내에 자리잡은 면세점으...

제천 산삼 경매장
전국산삼감정협회가 전국에서 두 번째...
 백화점면세점대형할인상가전문 상점명품 수입브랜드재래시장경매장 ...
 
엔터테인먼트
 
More  

삼락습지생태원
여름이면 물에 잠겨 애물단지 취급을 ...

대명함상공원
수도권 최초의 함상공원으로 경기도 김...

강릉 주문진항~하조대 왕복 유람선, 이사부크루즈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항과 양양 휴휴암...
 카지노동물원전망대유람선골프수족관댄스 ...
 
공연·전시·이벤트
 
More  

서울 남산국악당
서울특별시가 전통 국악의 우수성을 널...

채플린홀 (코미디 상설 공연장)
채플린 엔터테인먼트와 씨네코아가 마...

채플린홀 (코미디 상설 공연장)
채플린 엔터테인먼트와 씨네코아가 마...
 전시장연극공연장공연장, 이벤트홀전통공연장미술관, 갤러리영화관 ...
 
미용·건강
 
More  

옥시바 (Oxy Bar) (산소방)
아로마테라피 산소바인 옥시바(Oxy Ba...

아로마테라피 옥시바 (산소방)
산소농축기에서 만들어진 고농도 산소...

명상아루이 선(仙)
전통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서울...
 맛사지사우나스킨케어, 미용스포츠센터성형클리닉건강 수련웨딩샵 ...
 
스포츠
 
More  

한국폴로컨트리클럽 폴로경기장
한국폴로컨트리클럽이 제주시 구좌읍 ...

서울월드컵경기장 풋살구장
2008년 6월1일에 개장하여 운영을 시작...

한국산업기술대 실외 인공암장과 볼더링암벽
경기도 시화공단에 자리잡은 한국산업...
 탁구프로야구축구태권도프로농구사격수영 ...
 
   What's On Korea > 화제의 인물 >  

명창 정정렬 (丁貞烈)

문화관광부는 19세기 말. “조선적”인 판소리 시대가 서서히 끝나갈 무렵에 태어나 오랜 수련을 통해 “일류 명창”, “국창(國唱)”의 칭호를 받았고, 훗날 평자들에게 “근세(近世) 오명창(五名唱)”의 하나로 꼽혔던 명창 정정렬(丁貞烈) 선생을 2005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정정렬은 소리명창이 되는데 제일 중요한 요인인 “소리 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나 그 약점을 독특한 음악 해석으로 극복하여 명창이 되었다.

판소리에서는 고음부의 음역이 좋지 않아 자유로운 소리 표현이 잘 안되고, 소리가 심하게 거친 목을 ”떡목“이라고 하는데 소리꾼으로 대성하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을 오랜 공력으로 다듬어 내면 거칠면서도 힘이 있고, 소리의 극적인 면을 살려낼 수 있는데,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실제로 확인시켜준 대표적인 명창이 곧 정정렬이다.

정정렬은 일곱 살 무렵에 소리에 입문하여 수업을 시작하였는데,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입산수도(入山修道)하는 방식의 독공(篤工)을 할 만큼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독공은 대개 100일, 200일 단위의 기간 동안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한 일과를 모두 소리 연마에 쏟는 불가의 “용맹정진(勇猛精進)” 같은 공부방법이다. 대부분 성공한 명창들은 이러한 독공을 통해 소리 실력을 쌓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정정렬이 공부 열심히 하는 명창으로 평가되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약점을 오로지 연습으로 극복한 대표적 사례임을 잘 말해준다.

한편, 정정렬은 공력을 기울인 성음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해석을 완전히 새롭게 하여 “신식 판소리”를 부른 명창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정정렬은 목이 좋지 않아 “성음”으로 소리의 미학을 만족스럽게 표출하지 못하는 것을 다양한 음악의 변용으로 풀어낸 명창으로도 유명하다.

판소리는 성음과 장단, 다양한 조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사설의 극적 구성을 다이나믹하게 표현하는 음악인데, 정정렬은 성음에서 부족한 부분을 장단과 조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보충하려고 하였다.

정정렬은 판소리 사설을 노래하면서 장단을 정격대로 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본래의 장단 보다 길게 늘이거나, 또는 앞당겨 붙이는 등 “엇붙이는 방법”을 구사함으로써 음악적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의 변화무쌍한 소리 장단 구사는 웬만한 고수들이 소리를 맞추기 어려운 정도였는데, 그의 이러한 시도는 이후 판소리와 기타 민속음악 및 춤의 리듬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또 청중들은 소리꾼과 고수가 절묘하게 맞춰나가는 조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더욱 정정렬제 소리를 즐기게 되었다.

정정렬은 또 판소리의 장단의 부침새를 변화무쌍하고 정교하게 구성하는 동시에 조(調)와 음질(音質)을 변화시키는데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발성을 할 때도 밋밋하고 평평하게 하기보다는 극적 표현을 살려 흔들어 낸다거나, 밝고 씩씩한 표현보다는 애조 띤 계면조 표현을 확대시켰다. 그 결과 정정렬의 판소리는 화려하고 정교하며 세련된 표현이 넘치는 독특한 세계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동시대 명창들은 “신식 판소리” 라고 평하였다.

여러 가지 판소리 중에서 정정렬은 특히 <춘향가>의 판을 아주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판소리 명창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정정렬 나고 <춘향가> 다시 났다”라는 말과도 통할 만큼 그의 춘향가는 남달랐으니 그야말로 “창의적인 소리세계를 이룩한 명창”으로 기억될 만하다.

정정렬은 <춘향가>를 새롭게 짜면서 소리뿐만 아니라 극적 구성과 사설의 표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춘향과 이도령이 먼저 춘향모의 허락을 받은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첫날 밤을 지낸 후에야 춘향모에게 사실을 알린다든지, 사랑의 표현들이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된다든지, 이별 대목에서도 오리정에서 작별하는 장면을 더 넣어 슬픈 소리를 길게 부르도록 한 것이다.

정정렬이 짠 <춘향가>의 전편 구성을 보면 그가 소리꾼으로써 문학적 소양도 매우 잘 갖추고 있다는 평에 공감하게 된다. 특히 춘향이 멀리 떠나는 이도령을 바라보면서 “우두커니 바라볼 때 가는 대로 적게 뵌다. 달만큼 보이다가 별만큼 보이다가 나비만큼 불티만큼, 막상 고개 넘어가니 아주 깜박 그림자도 못 보겠구나” 라고 한 대목은 이별가의 명대목으로 꼽힌다.

정정렬은 1930년대에 방송과 공연활동, 음반 취입으로 가장 유명한 스타 명창이 되었다.

50대가 넘어 뒤늦게 서울의 중앙 무대로 진출해 작고하기 전까지 10년동안 정정렬은 후배 판소리 명창과 청중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김여란, 박녹주, 김소희 등 당대 최고의 여류 명창과 박동진, 김연수 등의 남자 명창들이 줄지어 그의 문하에 들었으며,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가장 제자가 많은 스승이었다. 그리고 판소리 명창으로서는 JODK 방송에 가장 많이 출연하였고, 빅타와 폴리돌 등의 음반회사의 초청으로 음반사에 기리 남을 대규모 전집 음반을 녹음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정정렬은 소리를 창극 식으로 구성하여 녹음하는 방식을 생각하여 <춘향전>, <심청전>, <화용도> 등의 전집을 냈는데, 그가 소리를 창극 식으로 부르고, 기악 반주를 붙여 녹음한 기획은 여러모로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정정렬은 1936년 무렵 창극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1902년 원각사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창극은 비록 무대에서 연극 식으로 소리하는 공연으로 자리를 잡아갔지만,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리의 배역을 나눠 부르는 식의 “분창(分唱)” 형식의 공연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하나의 줄거리가 있는 창극을 여러 날에 걸쳐 연속해서 공연하는 식의 “연쇄(連鎖) 창극” 도 시도되었는데, 처음에는 청중들의 흥미를 끌었으나 점차 관심이 저조해지고 말았다.

바로 이 무렵 정정렬은 창극의 연출을 맡아 창극의 소리와 대사는 전통성을 살려 품위와 격조를 더하고, 극적으로는 하루 공연에서 기승전결의 구조가 완결되도록 구성하며, 소리꾼들이 직접 연기를 하면서 소리를 불러 소리와 극이 겉돌지 않고 조화롭게 표현한 신 형식의 창극을 선보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공연장인 동양극장에는 연일 관람객이 넘쳤고, <춘향전>이 큰 성공을 거두자, 그 여세를 몰아 <흥보가> 등의 후속프로그램을 속속 발표함으로써 1936년은 그야말로 창극사에 신기원을 마련하였다. 그가 시도한 창극은 오늘날까지 창극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정정렬의 이러한 노력에 주목한 판소리 학자 중에는 그를 “현대 창극의 아버지” 라는 말로 그의 공로를 평가하기도 하였다.

[문의] 국어민족문화과 02-3704-9436

(자료 : 문화관광부)

2004-12-30
backsite linksend mailprint

회사소개 | 왓스언 뉴스 | 저작권 안내 | 광고·제휴 문의 | 채용 정보 | 사이트맵
Copyright ⓒ 2001 What's On Communications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