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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任允摯堂)

문화관광부는 조선 후기의 여성 성리학자로 전통유교시대 남성 전유물이었던 성리학을 평생 탐구하여 유교경전과 성리학 분야에 많은 업적을 이룬 임윤지당(任允摯堂)선생을 2005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임윤지당(1721년~1793년)은 조선 후기 영, 정조시대에 강원도 원주에서 살았던 여성 유학자였다. 그녀는 일평생 유교 경전과 성리학을 연구하여 우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원리를 체득하였다. 그리고 부단한 수양과 도덕적 실천으로 높은 인격을 완성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고 체득한 것을 훌륭한 문장으로 저술하여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 라는 문집으로 남겼다.

윤지당의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함흥판관을 지낸 노은(老隱) 임적(任適, 1685년~1728년)의 딸이다. 그는 대성리학자였던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의 여동생이며, 운호(雲湖) 임정주(任靖周)의 누님이었다. 8세 때 부친을 여의고 녹문에게서 “효경”, “열녀전”, “소학”, 사서(四書) 등의 유교 경전과 사서(史書) 등을 학습하였는데, 매우 총명하고 근면하였다. 윤지당은 학문에만 열중했던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인정이 많았으며, 교양과 부덕을 쌓아 조금도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점이 없었다.

임윤지당은 1721년(경종 원년)에 태어났다. 이 해는 그녀의 부친이 서울에서 벼슬하다가 양성(陽城, 현재의 경기도 안성 양성면) 현감(縣監)으로 부임하던 해였다. 윤지당은 다섯 살 때까지 여기서 자랐다. 1725년(5세)에 부친의 임지를 따라 함흥으로 갔다가, 2년 후에 부친이 사직하자 서울로 돌아왔다.

1728년 봄에 부친이 병사하고 아홉 살이 되던 다음 해(1729년) 가족을 따라 청주의 옥화(玉華)로 이사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오빠들과 함께 학문을 익히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녹문에게서 유교 경전과 사서(史書)들을 배웠다. 윤지당 일가는 8년 후(1737년)에 여주(驪州)로 이사하였고, 2년 후에 원주로 시집갔다.

윤지당은 19세(1739년)에 원주의 선비 신광유(申光裕)와 결혼하였으나, 8년 후(27세)에 사별하였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시동생 광우(光祐)의 아들 재준(在峻)을 입양하였으나 그도 일찍 죽었으므로 매우 불우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윤지당은 일생 동안 존심양성(存心養性)하는 공부를 쌓아 나태하거나 방심하지 않았고, 만년에는 독서와 저술에 힘썼다. 1793년 원주에서 7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윤지당의 문집인 “윤지당유고”는 상하 2편 1책, 목활자본으로, 그가 작고한지 3년 후인 1796년(정조 20년) 친정 동생 임정주와 시동생 신광우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상편에는 전기 2편, 평론 11편, 발문 2편, 논설 6편이 수록되어 있고, 하편에는 잠언(箴言) 4편, 명문(銘文) 3편, 찬문(贊文) 1편, 제문(祭文) 3편, 인(引) 1편, 경의(經義) 2편이 收녹되어 있다. 부록에는 언행록 19조와 발문인 약기 2편이 실려 있다.

“윤지당유고”에는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도 있고,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이나 “인심도심사단칠정설(人心道心四端七情說)”과 같은 성리학적 논문들도 있다. 또 중국의 역대 인물들을 비평한 역사평론과 교훈적 내용을 담은 운문들도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윤지당의 한문 문장들은 문학성이 높아 조선 시대 여성 문학사를 빛내고 있다. 아마도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류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중국의 경강(敬姜)과 반소(班昭)에 비유하였다.

본서에는 학술적인 논설이나 경의(경전주석)가 많이 수록되어 있고, 문학에 속하는 시문은 드물다. 그러나 제문 2편과 잠언 4편, 명문 3편은 상당한 문학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척형명(尺衡銘, 자와 저울에 새긴 명문)” 한 편은 특히 명문으로 이름나 친정이 있었던 충청도 선비들 사이에서 전송(傳誦)되어 오고 있다.

윤지당은 사람이 천지 중도(中道)의 품성을 받아 만물의 으뜸이 된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와 같이 윤지당은 인간의 존재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회복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보편적 인격의 실현과 심성의 수련이란 측면에서 윤지당은 남녀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의 존재를 음양의 우주질서와 같이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파악하였다. 남녀는 우주와 사회에서 똑같이 중요한 필수적 존재이지, 우열을 가진 존재라고는 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윤지당은 그 자신이 성현을 배울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노력하였다.

윤지당은 예법(禮法)의 실천을 매우 강조하였다. 그녀는 모든 예법이 다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특히 관혼상제(冠婚喪祭)가 예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주자의 “가례(家禮)”를 중시하였다. 윤지당은 여성의 보편적 심성 수련과 예의범절의 습득을 강조하였고, 학문과 문예에서 재능 있는 여성들을 존중하였다. 또 춘추대의와 명분을 숭상하여 여성들의 의리와 용기를 찬미하였다.

이와 같은 윤지당의 학문 활동과 저술에서 나타나는 사상은 조선 후기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보급된 교육과 그로 인해 점증하고 있던 의식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홈페이지] www.mct.go.kr
[문의] 국어민족문화과 02-3704-9438

(자료 제공 : 문화관광부)

200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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