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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孝明世子)

문화관광부가 2005년 "11월 문화인물"로 선정한 인물이다. 순조의 세자로 궁중 무용의 창사와 가사를 직접 짓고 전체 레퍼토리를 선정, 기획하였으며, 조선조 말까지 전해지는 53종의 궁중 정재 중 26종의 정재를 예제하고 재창작한 바 있다.

효명세자는 역대 국왕 중에 가장 예술적 문학적 조예가 깊고 뛰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춤을 사랑한 왕이었다. 조선 제23대 왕인 순조(純祖) 9년 8월9일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의 제1자로 태어나 순조 12년(1812년) 4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순조 27년 2월18일부터 30년 5월6일 급서하기 전까지 약 3년3개월 동안 대리 청정을 하였다.

그는 당시 안동 김씨 세도 정치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순조의 염원과 기대를 한 몸에 지고 부왕의 명을 받들어 대리 청정을 하였으며 대청 동안에 아버지 순조의 정치적 염원을 거의 가시화하는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증명해 보였다.

효명세자는 정조의 우문(右文)정치와 위민(爲民)정치를 계승코자 하였으며 정책적으로는 청의를 표방하고 엄정의리론을 펼쳐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여 대리 청정 말기에는 거의 민심을 수습하였다. 대리 청정 동안에 그는 예악 정치의 일환으로 궁중 연향과 춤을 다루는 고도의 무용정치를 펼쳐 효율적으로 안동 김씨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는 장치로 활용하였다. 당시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악정(樂政)이 중단되어 정재의 창사조차 제대로 전해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궁중 연향을 개최하면서 왕이 중심이 되는 정치 질서를 과시하고 왕실의 위엄과 존왕 의식을 표명하는 정치 의식으로 양식화하였다.

그리하여 짧은 통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이 화려한 황제식 궁중 연향들을 벌이면서 궁중 무용의 창사와 가사를 직접 짓고 연향에 쓰이는 치사와 전문을 직접 지어 올리고 이름만 남은 옛 정재들을 자신의 악장으로 되살려내고 연향의 규모를 확대하여 왕실의 위엄을 한껏 드러내는 화려한 정재와 연향의 양식을 확립한다. 그리하여 효명세자는 조선 후기 궁중 연향과 정재 양식을 새롭게 정립하였으며 이는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그가 정재 창작과 궁중 연향에 대해 보였던 각별한 관심과 참여는 그가 궁중 의식과 춤을 왕권 강화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수단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청을 시작한지 삼일 만에 자신의 하례식의 절차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안동 김문 계열의 전, 현직 예조판서들을 감봉 처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대리 청정 말기에 이르러서는 안동 김씨 세력을 정치적으로 거의 제거하고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고히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안정을 이루었다.

대리 청정을 통해 정치개혁을 시도하고자 효명은 왕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한 가시적인 조처로 여러 차례의 큰 궁중 연희를 개최하면서 궁중 연향 행사를 총괄하는 진찬소의 당상에 김조순에 맞섰던 박종경의 아들을 임명하여 안동 김씨 세력을 견제하고 강력한 왕권 회복을 통한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효명세자는 연향에 쓰일 정재들을 창작하면서 이름만 전해오던 춤들을 모두 자신의 신작(新作)으로 되살려 내었을 뿐 아니라 전대로부터 전승되어오던 정재들도 다시금 화려하게 채색하고 무원들의 수도 늘려 규모를 확대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대규모의 연희에 적합한 정재의 성격을 만들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유래한 당악 정재를 향악화하고 당악 정재(唐樂呈才)와 향악 정재(鄕樂呈才)간에 있었던 형식적 그리고 내용적인 차이를 불식시켰다. 이는 단지 중국에서 유래한 당악적 요소를 정치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춤이 중심이 되는 향악 정재의 예술적인 장점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진 결과라 생각한다.

효명세자는 자신이 대리 청정한 3년여의 짧은 시기를 통하여 조선 궁중 정재의 수준을 정점으로 끌어올려 정재를 왕궁 문화의 꽃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조선조 궁중 정재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그 결과 효명세자는 조선조 말까지 전해지는 53종의 궁중 정재 중 26종의 정재를 직접 예제하고 재창작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궁중 연향과 정재 양식을 새롭게 양식화하고 정비 확충하여 조선 정재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조선조 초기의 정재들이 왕권 창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도구로 쓰이던 정치적 색채를 퇴색시키고 효명의 문학작품 세계가 지녔던 자연 대상과 사물들을 본 뒤의 감흥을 춤으로 묘사하거나 자연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는 춤 그리고 이제까지 궁중 정재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독무 형태의 춤도 등장하며, 창사 없이 전문적인 기교를 선보이고 시각적인 흥겨움을 강조하는 스펙터클한 성격의 정재도 늘어나 궁중 무용의 주제와 소재가 다양해지고 표현 방식과 춤 형식 역시 다양해져서 그 예술적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나아가 공연 구성에 있어서도 향악 정재의 비율을 당악 정재에 비하여 월등히 높이고 조선적인 주제를 들여오는 등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춤에 있어서의 진경시대를 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가 조선조 그리고 나아가 우리나라 무용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는 그의 짧은 통치기간을 고려해 본다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할 가히 전무후무한 업적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효명세자와 같은 성군의 자질을 갖추고 뛰어난 예술적 안목을 지닌 왕의 애석한 죽음은 우리나라를 위해 매우 불행한 손실이었다.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의지가 결실을 맺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미완의 정치를 펼쳤지만 그의 예술적 업적만은 영원히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홈페이지] www.mct.go.kr
[문의] 국어민족문화과 02-3704-9438

200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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