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따른 꽃나무들 맘은 따로 있는데
이런 헤아림이 없는 인간들 마음 따로 노는 딴 나라축제다.
진해군항제라 난리법석을 떨고 있지만
직접 가 본 인간만이 완전 감쪽같이 속았다는 걸 알게된다.
그래 원정간 교통비랑 카메라랑 허비한 시간들..
화개10리 벚꽃축제도, 하동 80리 벚꽃축제도, 산수유축제도 마찬가지..
언론+방송+관광이 짜고 친 생구라 뉴스도 심심찮고..
심젼, 매화꽃 핀 것을 벚꽃 피었다고 보도한 무식 창창한 뉴스도 있었단다.
엉터리 소문에 고삐 끌려 찾아 간 발길들만 발 부끄러울 뿐~
지난주 지리산 평사리에서 올라올 때 산수유마을로
소문 잘난 구례군 현천마을을 보니 노란 기미조차 찾아 볼 수 없었는데
3월 28일 내려갈 때는 이제 시작을 알리는 기운이 감돈다.
지리산 곳곳은 산수유 마을보다 새치기해서 핀 산수유나무가 즐비하다.
올해는 고로쇠 수액농사도 보기 드문 흉년이란다.
청학동 사는 친구가 엄마랑 내려온 날보고 고로쇠 한 병 주며 하는 말..
눈이 엉뚱한데 많이 와 건조한데다 추위가 기승부려서..
벚꽃은 잦은 봄비에 평균 12도 이상은 되야 꽃가지 끝까지 힘이 들어가는데
건조하고 춥기만 하니 나무는 날씨 눈치만 보고있는 거다.
봄꽃나무로 지리산 남쪽자락을 하얗게 수놓고
천상이 부여한 잽싼 순발력으로 그 자태를 뽐내는 건 매화뿐이다.
눈밭 가운데 성급한 전령 티를 내고있는 설중매.
봄꽃나무들 선착순으로 꽃피는 순위는 다음과 같다.
매화 - 동백 - 산수유 - 물앵두 - 목련 - 살구꽃 - 벚꽃 - 복숭아꽃 - 배꽃
이건 지리산 남쪽나라 하동~구례 일대를 기준으로 한 거다.
봄꽃망울들 터지는 때는 나무들 꼴리는대로 춤을 춘다.
지역에 따라, 지형에 따라, 해발고도에 따라, 강수량과 햇빛과 온도에 따라..
인간들 정한 절기랑 상관없이 노는 나무들 꽃마음들..
이미 12월에 개나리 진달래 장미 핀 걸 이상 기후로 봤으면서 감을 모른다.
무슨무슨 꽃 축제란 명찰따라 맥없이 갔다간 낭패만 볼 뿐~
봄꽃나무들.. 특히나 과수에 속하는 나무들 꽃은 비슷하다.
벚꽃의 버찌(벚)를 본으로, 매화 - 살구 - 앵두 - 자두 - 복숭아 - 배꽃 - 사과꽃.
관찰력+집중력으로 보면 꽃덩이, 꽃잎, 꽃술, 꽃색이 다 다르다.
꽃 구경하기에 앞서 나무의 크기, 줄기 가지 형태, 질감에 색조도 조금씩 다 다르다.
큰 나무에 무수히 피는 작은 꽃이라 접사로 눈여겨 보지 않고
꽃나무 전체를 광각 덩어리로 보다보니 꽃 생김새 나무 생김새를 건성으로 보는 거다.
게다가 엄청나게 터널 대궐 이루며 줄지어 피었으니 넋 나감은 당근~
이번 기회에 매화랑 벚꽃도 구분 못하는 찌질이 기자되지 말고
꽃나무들 저마다 그 이유가 분명히 있어 조금씩 다 다르다는 걸 진지하게 학습해보자.
사실 하동80리 길을 메우는 벚꽃보다 길가 양쪽에
널부러진 배밭의 무수한 배꽃이 더 어여쁘고 영롱하고 화사해 신비롭다.
맛난 배를 주렁주렁 달기 위해 꽃에 벌이 바쁜 구경거리도..
사실 과수에 속하는 봄꽃나무들은 제각기 다 한 미용한다.
내가 놀다 오는 평사리 월선네 마당에는
큼직한 물앵두가 꽃망울 터지기 직전에 나무가 불그스름하다.
다음주면 일제히 꽃이 터져 마당이 이뻐질 것이고
초여름 되면 소주 한 병들고 나무에 올라가 앵두 먹고 한 모금 먹고 할 판~
옛날 나무 옆에 우물가가 있었기에 물따라 잘도 자란다.
저장성이 없는 열매라 나무에서 바로 따 먹는 게 최고다.
물앵두나무 하나 있으면 거지가 떼거지로 몰려와도 걱정 안 한다는 말이 있듯..
올해는 앵두 안주로 비타민 원없이 섭취하러 날잡을 예정이다.
집 안 마당 작은 연못가에는 살구나무 하나가 있다.
이 나무 꽃 또한 화사한 자태로는 어느 봄꽃 과수에 견주어 절대 안 꿀린다.
한가지 잡아 매단 고추 <살구나무 고추 걸렸네> 코믹 버전..
꽃 피고 이파리 나올 때 보색 대비로 무지 돋보일 빨간 고추가 그려진다.
이 고추는 만 2년째 계절을 무시하고 싱싱하게 달려있다.
이놈 또한 앵두랑 거의 같이 피고 열매 맺는 동창이다.
마을 야산에 올라가면 자두나무가 있는데 이 또한 비타민 소주안주거리다.
마당.. 마을로.. 널린 과수는 꽃과 열매로 사랑 받을 수 밖에..
하여간, 하동 땅 악양 평사리엔 배밭 매실밭 천지에다
산과 들과 집들 곰곰히 살펴보면 개인플레이 하는 먹는 나무는 다 있는듯..
풍치에 운치를 빚는데 그냥 벚꽃보다 과수가 훨 생산적이다.
종로에 사과나무는 사라졌어도 여기선 군데군데 보인다.
사과만큼이나 탐스러운 자태를 여미는 사과꽃이란~
아카시아꽃처럼 그냥 먹어도 상큼한 단맛날 것 같은 드문드문 능금화나무.
특산지의 작물 상품화에 어디 비기겠냐마는 희귀한 맛으로..
평사리에서 원주민 흉내내며 쪼글쪼글한 할매사과를 맛본다.
벚꽃 핀 줄 알고 곳곳에서 떼거지로 몰린 상춘객들..
꿩 대신 닭이라고 '토지' 찍는 최참판댁으로만 몰려 연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수유를 생강나무로 보는 이 없고 개나리로 보는 이는 있다.
이파리 나오고 난 뒤 꽃이 나와야 하는데 거꾸로 꽃피는 봄을 시작하니
인간들 정신이 오락가락.. 혼 빠져 갈피를 못 잡는가~
틱틱한 나뭇가지에 이파리도 안 나온 상태에서
꽃만 즐긴다는 개념이 껍데기 치장문화 한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꽃도 이쁘지만 갓 나오는 이파리 새순도 무척 신비한데..
정신없이 몰려 다니는 관광에서 이젠 정신 차리고
자연을 신비하게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즐기는 도락 문화를 바래본다.
